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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나 삭발 투쟁 결의문> [2022-07-11 07:30, 삼각지역(4호선)]
작성자 이승찬
조회수 138
등록일 2022-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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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나 삭발 투쟁 결의문> [2022-07-11 07:30, 삼각지역(4호선)]

자폐를 최초로 연구한 사람 중 하나인 한스 아스퍼거는 자폐에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말했어요. 일탈적이고 비정상적인 모든것이 반드시 열등한 것은 아니다. 자폐아들은 새로운 사고방식과 경험으로 훗날 놀라운 성과를 이룰 수도 있다. 한스 아스퍼거는 나치 부역자였습니다. 그는 살 가치가 있는 아이와 없는 아이를 구분하는 일을 했어요. 나치의 관점에서 살 가치가 없는 사람은 장애인, 불치병환자, 자폐를 포함한 정신 질환자 등이었습니다.
80년 전만 해도 자폐는 살 가치가 없는 병이였습니다. 80년 전만 해도 나와 김정훈씨는 살 가치가 없는 사람들이었어요. 지금도 수 백 명의 사람들이 '의대생이 죽고 자폐인이 살면 국가적 손실'이란 글에 '좋아요'를 누릅니다. 그게 우리가 짊어진 이 장애의 무게입니다. 마치 지금 우리의 이야기를 하듯 TV 드라마 주인공의 대사입니다.

저는 불행 중 다행으로 엄마의 등골을 팔아 비장애인 사회 구조 속에 파고들 수 있었습니다. 엄마의 등에 업혀 초등고를 다녔으니깐요. 그리고 대학을 다녔습니다. 대학 3년 동안도 과 동기 선후배들의 도움 없이는 내가 원하는 교양과목도 내가 희망하는 부전공도 다닐 엄두를 내지 못했죠.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이라 여기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전공과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생기고 전동휠체어가 생기면서 날개 돋힌 듯 1년을 자유롭게 살았습니다. 물론 전동휠체어가 허락한 공간이 전부지만 그래도 그때를 생각하면 참 행복합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름 '장애인' 우대 조건인 곳에 촘촘히 이력서를 넣었지만 족족이 떨어졌습니다. 처음엔 이유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면접을 몇 군데 다니면서 알았습니다. 아 ... 나는 손도 품도 많이 가는 인력이라는 것을... 휠체어를 탄 나를 위한 업무환경은 고사하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거죠. 시청 공공근로를 하러 간 곳도 기억이 나네요. 버젓이 이력서를 받았는데, 첫 출근 하는 날 제게 한 첫 질문은 "한글은 쓰실 줄 아세요?" 였습니다. 그냥 어이없는 웃음으로 6개월 동안 도장만 찍었던 게 생각이 나네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찾은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서울 러시아워 지옥철을 피해 새벽 6시에 집을 나서 출근을 하였는데, 결국 직장에서 저는 그닥 쓸모 있는 인재는 아니였습니다.
장애인 화장실은 하나인데 눈치없는 분들이 한번씩 들어가면 저는 5분도 눈치보며 써야 하는 휴게시간을 10분 이상 써야 하고, 조금만 아파도 '몸이 불편하고 약하다'는 평가를 들어야 해서 아픈 것도 참았습니다. 그렇게 삶이 피폐해질 무렵, 한겨울 마로니에공원에서 장애인평생교육의 권리를 외치던 천막농성장 노들야학을 만났고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그때 그 온기는 지금 생각해도 너무 따뜻했습니다.
처음엔 사회복지 실습으로 들어간 강릉장애인자립생활센터장님이 한창 이동권 투쟁을 하고 있을 무렵, 제게 '강릉시는 이동권 보장하라'는 몸 피시를 휠체어 등받이에 걸고 다니면 안 되겠냐는 권유에 눈물을 쏟으며 죄송하다고 그것만큼은 못 하겠다고 하던 게 엊그제 같습니다. 사실 지금도 여전히 지하철 타기 투쟁할 때 벌 때 같이 경찰들이 저를 둘러쌀 때 두렵고 무섭습니다. 그래도 꿋꿋히 저를 당당하게 만들었던 선배 동지들의 투쟁을 모르지 않기에 용기 냅니다.
오늘도 저는 우리의 현실이 무게가 여전히 좋아진 세상이라 이야기하기에 마냥 슬프고 버겁지만, 그래도 전동휠체어를 타고 당당히 도보를 버스를 지하철을 장콜을 타고 갈 수 있는 곳을 가고 싶은 곳을 가고, 사람을 만나고 여전히 부족하지만, 나를 만나 함께 웃는 누군가가 있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서, 그래도 여기서 만큼은 쓸모 있는 인재로 사람으로 동료로 이웃으로 만날 수 있어서, 그리고 엄마와 딸이 될 수 있어서 오늘의 머리가 아까운 것이 아니라 엄마와 딸이 놀랠까봐 살짝 두렵지만, 사실 거울 속에 제 눈이 더 놀랠까봐, 그래도 꼭 언젠가 오늘이 우리의 현재 삶의 무게를 덜어줄 수 있는 용기였다 믿어봅니다.

여전히 불쌍하고 안타깝고 불편하고 신경 쓰이는 장애인이지만, 언젠간 정말 세상 좋아졌어라 라는 말도 할 필요 없는 그런 세상에서 제 딸이 살기를 바래 봅니다.

그리고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더 이상 죽지 마세요.
그리고 죽이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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